시 평집 ㅡ어느 봄날에선가 꿈에선가

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

koarm 2020. 6. 23. 06:48

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

 

청마 유치환

 

 

고독은 욕되지 않는다

견디는 이의 값진 영광

 

겨울의 숲으로 오니

그렇게 요조턴 빛깔도

설레이던 몸짓들도

깡그리 거두어 간 기술사의 모자

앙상한 공허만이

먼 한천 끝까지 잇닿아 있어

차라리

마음 고독한 자의 거닐기에 좋아라

 

진실로 참되고 옳음이

죽어지고 숨어야 하는 이 계절엔

나의 뜨거운 노래는

여기 언 땅에 묻으리

 

아 아 나의 이름은 나의 노래

목숨보다 귀하고 높은 것

마침내 비굴한 목숨은

눈을 에이고 땅바닥 옥에

무쇠 연자를 돌릴지라도

나의 노래는

비도를 치레하기에 아끼지는 않으리

 

들어보라

저 거짓의 거리에서 물결쳐 오는

뭇 구호와 빈 찬양의 헛한 울림을

모두가 영혼을 팔아 예복을 입고

소리 맞춰 목청 뽑을지라도

 

여기 진실은 고독히

뜨거운 노래를 땅에 묻는다

 

시 감상 ㅡ고암

고암은 외로운 바위라고 했으나 정확히 말하면 고암은 외롭다기보다는 고독한 것이다.

지금 고독한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을 것이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처럼.

대신 그의 뜨거운 노래를 거기 언 땅에 묻을 것이다. 호호 손을 불며.

 

지금은 선거철이다. 들어보라 저 거짓의 거리에서 물결쳐오는 뭇 거짓 구호와 표플리즘의 쓰레기들을. 모두가 영혼을 팔아 예복을 사고 유권자들을 기만하는 이 시대의 허상을. 그래서 시인은 차라리 뜨거운 노래를 언 땅에 묻고자 했으리....

 

그러나 고독은 욕되지 않고 견디는 자에게 값진 영광으로 오리. 아아 그의 노래는 그의 이름 그의 영광 목숨보다 귀하고 높은 것. 겨울의 황량한 숲으로 오리 기술사의 모자를 쓰고.

#사랑한다면 지금 그대로

#복사꽃 피고 질 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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