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면 지금 그대로

시집평

koarm 2021. 3. 11. 12:07

시집 평

고독에 위리안치 된 시인

기노현(문인)

 

박 종복 시인의 시집 <사랑한다면 지금 그대로><고독은 나의 운명>이 있다.

 

- 나는 아무도 찾지 않는 심산의 바위처럼 고독하다

스스로 지은 외로울 고 바위 암, 고암이라는 호처럼 고독

하게 살고 있다

 

- 중략-

 

외로우면 홀로 술을 마시고 담배 피운다

큰 소리로 노래 부르고

맘에 내키면 책 보고 글 쓴다

 

- 중략-

 

하여튼 고독은 나의 절친한 친구가 되었다 아니 차라리

나의 운명이다.

누군가는 나이를 한 살 씩 먹어갈수록 고독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고독은 결코 욕되지 않을 터니까

우리가 죽을 때도 결국 혼자 가는 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고독을 즐길 줄 알아야 한다

고독을 즐길 수만 있다면 고독만큼 좋은 친구도 없다

고독을 즐긴다는 것, 그것은 생활습관이라기 보다는 기술이다.

 

-<고독은 나의 운명> 부분-

거기에 심산의 바위처럼 고독하여 자신의 호를고암이라 했다 하고 고독을 자신의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리고 고독을 즐길 수만 있다면 그만한 친구도 없고, 고독을 즐기는 것은 생활습관이라기 보다 기술이다고 결론 내렸다.

 

불경에천지간아독존이라고 했으니 인간은 본시 고독한 존재로 태어나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일반화된 인식일지 모르겠으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고독은 사람이 느끼는 여러 감정 중 하나 일 뿐이다. 의지로 관리와 조절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시인 자신의 고독에 대한 강변은, 스스로 자신을 가혹한 고독살이에 위리안치 하기까지는 가족사든 성장환경이든 시대적, 사회적 좌절이든 과정은 분명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고독을 내뱉듯이 거칠게 쓰여져 모인 이 시집은 마치 시인의 자서전을 보는 듯하다.

 

<나는 복제된 인간이다>에는 자신이 혈통의 열성인자로 복제되었다고 쓰고 있다. 심한 열등의식이다. 이것이 난치병 같은 고독의 씨가 되지 않았나 싶다. <추억 속으로>에서 보듯이 바다 가까운 작은 마을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시인이 언젠가의 술자리에서 내게 했던 유년의 회고는, 아버지의 첩살림으로 생활은 궁핍했고 형님의 뒷바라지로 학교를 다녀다고 했다. 외로웠으리라 고독이 성장했으리라. 철저히 혼자라는 고립은 늘 위기감을 느끼게 했고 고독이 팽배해지면 방황했으리라.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불 적마다 그는 흔들리고

어느 항구에도 닻을 내리지 못했다

 

- 중략-

 

어디 그를 묶어 둘 조각구름 하나 없나

-<방황>의 부분-

 

절망하는 고독이다. 그 외도 시인은 <받아쓰기>, <밤 까기>, <양파 까기>, <기드론 시내를 건너지 마라>, <다리 밑에서 주어온 나>, <고암에게 있어 산다는 것이란> 등에서 주체하지 못하는 고독을 노래하다가 <그 남자의 2017년 봄><종복아, 이제>에서 절규하고 있다. 가슴이 먹먹하다. 외로움과 즐거움은 감정의 양면(두 얼굴)인데 시인은 철저히 고독의 페르소나다.

 

그러나 시인은 <헛것>을 끝으로 고독을 벗어나려 노력한다. 아니 고독을 즐기는 기술을 터득해 간다고 해야 할 것 같다. <>,<너도 너의 것이 아니다>, <나는 빚진자>, <정박>, <괜찮다 이만하면 괜찮다>, <넉넉하다>, <스몰 이즈 뷰티풀>, <사랑한다는 것은> 등에서 그런 시인의 심정이 드러나 보인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고독해야 자신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 본다. 그러면서 자기성찰도 한다. 고독은 때로 고요하고 평온하기도 한다. 우리는 그런 고독을 소중해 할 줄도 알아야 겠지만 생활 속 거리 두기를 유지해야 할 필요가 있다. 고독의 생성인자가 워낙 다양하여 난치병 같은 중증이 되면 감당하기 어려워 자학하기 때문이다. 고독을 된장만큼만 숙성시키자. 가끔씩 찍어 맛보면 그 구수함에 침이 감기도록.

 

나는 시인의 연작시 <봉숭아1~4> 4편에서 고독의 숙성 과정을 보았고, <한적한 게으름의 미학><나는 이제 무위도식하리라>에서 시인이 고독을 관리하는 것을 느꼈다.

사실 고독에서 향기가 나기 시작하고 멀찍이 거리 두고 삶을 관조 할 때 고독은 완숙의 절정에 이른다. <여백의 미학>에 그런 향기가 있다.

 

동양화에는 여백이 있다

동양적인 삶에도 여백이 있었다

산수화를 그리다 붓을 멈추듯

멈추면 비로소 보아는 것 들이 있었다

 

- 중략-

 

가끔은 삶에 콤마(,)를 찍어야 한다

영원한 피어리드(.)를 찍기 전에

콤마를 찍고 쉴 줄도 알아야 한다

물음표나 느낌표도 때로는 말없음표도 필요하고

 

참 고독은 혼자서도 외롭지 않아야하고, 상처를 치유해야하고, 새로운 삶을 개척해 나가야하고, 생활 속에서 즐거움, 만족, 행복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여기 내뱉듯이 거칠게 직설적으로 쓰여진 자서전 같은 시들을 쭈욱 읽어보면, 시인은 자신에게 내재된 고독의 뿌리와, 그것을 벗어던져야 하는 것과, 남은여생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알고 있는 듯하다. 어쩌면 시와 시 쓰는 과정에서 더러 체득했으리라 짐작해 본다. 시인의 시에 대한 사랑과 시 쓰는 열정이 대단했음을 지켜봐왔기 때문이다.

 

시는 놀이하는 동물의 문화로써 언어예술이다. 시인의 다음 시집에서는 재치와 해학, 삶에 대한 고찰, 사물과 자연에 대한 관조, 언어의 기교 등에서 느끼는 재미를 기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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