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균
어느 머언 곳의 그리운 소식이기에
이 한밤 소리없이 흩날리느뇨.
처마 밑에 호롱불 여위여가며
서글픈 옛 자친양 흰눈이 나려
하이얀 입김 절로 가슴이 매어
마음 허공에 등불을 켜고
내 홀로 밤 깊어 뜰에 나리면
머언 곳에 여인의 옷벗는 소리.
희미한 눈발
이는 어느 잃어진 추억의 조각이기에
싸늘한 추회 이리 가쁘게 설레이느뇨.
한 줄기 빛도 향기도 없이
호올로 차단한 의상을 하고
흰 눈은 나려서 쌓여
내 슬픔 그 위에 고이 서리라.
(1938년 1월 조선일보 신춘문에 당선작품 )
ㅡ <시감상 박고암 >
밖에 눈이 내린다. 당신이 가버린 지금.
눈은 역시 밤에 와야한다. 소록소록 흰눈이 내려, 내리고 쌓여.
밤에 오는 눈이 제격이다. 월백,설백,천지백이라.
네온에 비친 눈은 또 어떤가 ?
사랑하는 연인도 밤에, 그것도 눈오는 밤에 막차를 타고 떠나야 한다.
밤새 소록소록 흰눈이 내려
아침에 눈을 뜨면 온천지가 은세계가 되어 있는
출근길이 좀 미끄러우면 어떠랴?
눈 오는 소리가 머언 곳에 여인의 옷벗는 소리라.
딴은 옷벗는 소리 보다는 옷벗는 모습이 더 좋을 듯 하건만.
사각 사각 한복을 벗는 것일까 ?
1938년에 발표된 시라는 점을 감안하면 한복이 맞을 법도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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