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사꽃 피고 지고

암소 한 마리

koarm 2020. 12. 5. 22:57

부모로부터 받은 유산은 암소 한 마리. 첫 직장인 국회사무처에 근무할 때 있을 곳이 없어 사실상의 보호자인 큰 형에게 결혼도 내가 벌어서 하고 더 이상 상속을 바라지 않겠다고 하고 그 소 한 마리를 팔아 부쳐온 돈으로 신길동에 단칸 문간방을 얻었다. 그 후로 어머니로부터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논 밭 몇 마지기를 내게 유산으로 주라고 했다는 말을 들었지만 큰 형님과 약속한 대로 더 이상은 요구하지 않았다. 결혼식은 모교 초등학교 교실에서, 신부 양장과 반지는 외상으로, 신혼여행은 버스타고 부산으로 갔다. 신혼 방은 신길동 그 단칸방에서 마이너스로 시작하였다. 국회사무처의 월급이 4만원, 집도 절도 없는 우리로선 너무 박해 16개월 국회사무처 근무를 접고 기업은행으로 직장을 옮겼다. 기업은행은 보수가 조금 나아 월급을 타면 아내가 명동에 있는 해동상호금고라는 곳에 적금을 넣었는데 이자가 쏠쏠 했었다는 기억. 가난하기는 했지만 신길동 단칸 문간방 신혼생활이 지금 생각하면 우리 부부의 생에 가장 행복한 시절이 인 것 같다.

 

신길동에서 주안으로, 광주로, 여수로 근무지를 이동해 가면서 명암도 많았지만 기업은행은 내가 빚을 진 곳이다. 아들 딸 결혼시키고 지금 이정도의 부를 누리며 살고 있으니 내 복이 차고 넘친다. 암소 한 마리가 지금 우리의 재산의 기초가 되어 이 만큼 불었다. 단 시골에 가면 외양간이 그때 이후 비어있어 죄 지은 마음이다. 이제 내가 받은 은혜 패스하며 살아야 한다.

 

#신간 <복사꽃 피고 질 때 마다 >

#신간 <사랑한다면 지금 그대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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