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모음 -곁에 없으면 더욱 그리워질까

지자요수 덕자요산

koarm 2020. 5. 21. 03:22

지자요수 덕자요산

 

지자(智者)는 요수(樂⽔)하고

덕자(德者)는 요산(樂⼭)한다고 했는데

그대, 물을 좋아하나요?

그럼 그대는 지자(智者)이네요.

물도 좋아하고 산도 좋아한다고요?

그럼 그대는 지덕(知德)을 겸비한

부러울 것 없는 사람이네요.

난 물-바다, 호수, 강-을 보기도 좋아하고

마시기도 엄청(그것도 생수로, 하루에 5리터 이상)

좋아하지만

태고 적 부터 앓아온 중이염(그걸 난 운명이라 부른다)

때문인지

물로 씻기도, 물에 들어가기도 싫어하니 지자 측에는 들어가기 틀렸고

산도 멀리서 보기만 좋아하고 오르기는 싫어하니까

덕자 축에도 들어가지 못 하겠네

 

그럼 나는 뭐야?

여자라는 산에는 올라가기는 좋아하니

아쉬운 데로 그럼 카사노바는 아닐 지라도

약간의 덕을 갖춘 건달인가?

물만해도 그렇군 난 갯바위에서 홀로 앉아서

하루 한 나절을 바다를 봐라 보기를 즐겼으니

지자는 못 되어도 지자 근처에는 갈 만도 하네

또한 서울의 명물인 한강변을 거닐며

들어가지는 못할망정 한강물을 보기를 좋아하니

한 점 점수를 더 줄 수도

물로 만든 술을 좋아하고

똑같은 액체인 우유 마시기를 즐겨하니

그 또한 한 점 더 줄 수도

그럼 나는 푼수인 지자인가?

 

물에 관한 아픈 기억도 있다.

아들과 함께 괌에 갔을 때

‘스노클링’이라고 바나나보트를 타고

깊은 바다로 들어가서 물속을 들여다보는 거란다.

물 깊은 데로 구명조끼를 입고 숨 쉬는 장비를 하고

바나나보트를 타고 갔는데

가만히 물속으로 내려야 하는 데 난 다이빙을 한 것이다

물속으로 쑥 들어갔다 나와서(물을 먹었고, 아픈 귀에는

물이 들어갔고) 가이드에게 서툰 영어로

“난 돌아가고 싶어”(I wanna return !)이라고 말했다.

어린 아이들도 물안경과 숨쉬어주는 장비로 수중의

물고기들을 보며 즐거워하는 데……

또 하나의 먹는 물에 관한 괴로웠던 기억도 있다.

8박 10일로 러시아를 거쳐 북유럽 6개국을 여행 했을 때의 기억이다.

경비를 절약하기 위하여 국가 간 이동수단을 비행기가 아닌 버스를 선택했었다

그런데 버스로 이동 도중 화장실 가는 게 그렇게 고역일 수 없었다

화장실도 쉽게 찾을 수 없고, 유료 화장실이라 일일이 그 나라의

동전을 준비해야 하고 다음 화장실 나올 때가지 소변을 참아야 하니까 물도 마실 수 없고

염병할 물 값은 또 왜 그렇게 비싸

국내에서 그렇게 맘 놓고 마시던 물을 마실 수 없으니

입술은 바싹바싹 타들어 가고 심한 가뭄에 시들어진 나무 마냥

시들시들 해진 나를 보고 같이 갔던 사람들이

“바깥양반 어디 아프세요?”하고 아내에게 묻더라나.

북유럽 여행을 다녀와서 아내에게 맨 처음 한 말

“하와이를 죽기 전에 가보는 것 외에는 다시는 해외여행 안 가겠다.”

물에 얽힌 사연은 있어도

나는 물 없으면 살 수 없다.

상선약수(上善若⽔) 가장 아름다운 인생은 물처럼 사는 것이라고.

나는 물 흐르듯 살아가려고 애썼다고 할 수 있다.

흐름에 거역하기를 싫어하면서

물 흐르는 대로 살고자 했다.

자고 싶으면 자고, 먹고 싶으면 먹고, 마시고 싶은 대로 마시며,

가고 싶으면 가고, 하고 싶으면 참지 않고 하고...

그런 의미에서 나는 물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 물처럼 살려고 애쓴 사람

참 智者는 아닌지?

가장 아름답게 인생을 사는 것은 아닌지?

#복사꽃 나무는 일곱 번 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