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할 말이 남아서

살구가 익을 때 쯤 이면

koarm 2021. 8. 29. 12:23

뒤안*의 살구나무에 사루가 노오랗게 익을 때 쯤 이면

누나들은 보리 수확하랴, 모내기 하랴 바쁘기만 한데

막둥이는 혹은 살구나무를 타고 올라가서

혹은 장대로 살구를 따서

새큼새큼한 살구를 먹는 게 좋았다

 

뒷집 숙이 에게도 살구 몇 알을 주고

애기 벤 환이네 누나에게도 주고

살구를 양쪽 호주머니 가득 담고

진둥** 동수 집으로, 윗마을 창수 집으로

찾아가 살구를 나눠 준다

 

앞마당의 감은 아직 이른 철

배도 사과도 복숭아도 구할 수 없고

바나나는 이름조차 듣지 못한

내 자란 옛 시골 마을

살구는 초 여름날의 유일한 간식거리였다

 

지금도 아내가 시장에서 살구를 사오면

생각난다

그 시절 옛 고향 집의 살구 맛이

 

*뒷마당의 내 고향 사투리

**마을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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