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릴 때마다
청량리M병원과
그 뒤로 수차례의 광주요한병원에 입원 당했던 일을 생각하라
그 이후의 끝없는 퇴행을 생각해보라
정신 나간 막내 때문에 가슴 아파하던 이제는 작고한 큰형님,
무작정 집을 뛰쳐나와 부산까지 떼밀려 갔을 때 두 번이나 보호해 줬던
사촌 형을 생각해 보라
부산에서
신용카드와 지갑 등 일체를 베레모 쓴 군인에게 빼앗기고
발가벗겨진 채 밤새 헤매던 일,
새벽녘에 네게 옷을 입혀준 파출소 순경과,
자기의 점심 도시락을 네게 주어 허기를 채우게 하고
택시비를 주었던 이름 모른 천사미용사를 생각해 보라
흔들릴 때마다
광주 운암아파트와 기업은행 호남본부 시절을 생각해보라
요한병원에서 갓 퇴원해 독한 약 때문에 근무하기 어려웠던 시절,
직장을 그만두면 아내와 자식들이 굶어죽지 않을까를 염려했던 암울한 시절,
이제는 그 절망의 내용까지도 잊은
흔들릴 때마다
약물중독으로 손이 떨려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지 못했던 기억
서울대병원 가는 길 온몸이 떨려 소변을 바지에 흘린 기억을 생각해보라
흔들릴 때마다
삼십 대 이후 봄이면 봄마다 병이 재발하여
아내가 수없이 흘린 눈물을 생각해보라
살아서 사람이되 사람이 아닌 너를 지금까지 눈물로 간호한
그녀의 헌신적 사랑을 생각해보라
가난하다고 생각이 들면
마이너스로 시작한 신길동 단칸 신혼 방을 기억하라
가전제품이라고는 골드스타 선풍기 하나
김치를 보관하려면 안집 냉장고를 이용했던 시절
그 시절을 생각하면 몇 천 배의 부를 누리며 살고 있다
그러니
이제는 흔들리지 마라
돌보지 못했음에도 잘 커준 딸과 아들
평생을 따라다니던 병까지
네게 있는 모든 것에 감사하며 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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