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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n한 시문학 강의 교재 3 에서 ㅡ박두진 편

koarm 2022. 3. 5. 00:47

청록파의 혜산(兮山) 박두진의 시 道峰

 

1916~1998 경기도 안성 출신

1989 1회 정지용 문학상

1988 인촌상 수상

 

<道峰(도봉)>

 

산새도 날러와

우짖지 않고

 

구름도 떠가곤

오지 않는다.

 

인적 끊인 곳

홀로 앉은

가을 산의 어스름.

 

호오이 호오이 소리 높여

나는 누구도 없이 불러 보나.

 

울림은 헛되이

먼 골 골을 되돌아 올 뿐.

 

산 그늘 길게 느리며

붉게 해는 넘어가고

 

황혼과 함께

이어 별과 밤은 오리니

 

삶은 오직 갈수록 쓸쓸하고

사랑은 한갓 괴로울 뿐.

 

그대 위하여 나는 이제도 이

긴 밤과 슬픔을 갖거니와.

 

이 밤을 그대는, 나도 모르는

어느 마을에서 쉬느뇨.

 

<<돌의 노래>

 

돌 이어라, 나는

여기 절정.

바다가 바라뵈는 꼭대기에

앉아

종일을 잠잠하는

돌 이어라.

 

밀어 올려라 밀어 올려다

나만 혼자 이 꼭지에 앉아 있게 하고

언제였을까

바다는

저리 멀리 저리 멀리

달아나 버려

 

손 흔들어 손 흔들어

불러도 다시 안 올 푸른 물이기

다만 나는

귀 쭝겨 파도 소릴

아쉬워 할 뿐.

눈으로만 먼 파돌

어루만진다

 

오 돌.

어느 때나 푸른 새로

날아 오르랴.

먼 위로 아득히 짙은 푸르름

온 몸에 속속들이

하늘이 와 스미면

어느 때나 다시 뿜는 입김을 받아

푸른 새로 파닥어려

날아 오르랴.

 

밤이면 달과 별

낮이면 햇볕.

바람 비 부디치고, 흰 눈

펄 펄 내려

철 따라 이는 것에 피가 감기고,

스며드는 빛깔들

아롱지는 빛깔들에

혼이 곱는다.

 

어느 땐들 맑은 날만

있었으랴만,

여기 절정.

바다가 바라뵈는 꼭대기에 앉아,

하늘 먹고 햇볕 먹고

먼 그 언제

푸른 새로 날고 지고

기다려 산다.

 

<꽃구름 속에>

 

꽃바람 꽃바람

마을마다 훈훈히

불어오리

 

복사꽃 살구꽃

화안한 속에

구름처럼 꽃구름 꽃구름

화안한 속에

 

꽃가루 흩뿌리어

마을마다 진한

꽃향기 풍기어라

 

치위와 주림에 시달리어

한겨우내- 움치고 떨며

살아 나온 사람들

 

서러운 얘기

서러운 얘기

다아

까맣게 잊고

꽃향에 꽃향에

취하여

아득하니 꽃구름 속에

쓸어지게 하여라

 

나비처럼

쓸어지게 하여라

1941<문장>

 

#광복 4년 전 1941

일제 강점기 말 대표적인 문학지였던 <문장> 폐간호에 발표된 작품

이홍렬이 곡을 붙여 가곡으로 1965년 간행된 너를 위하여에 수록됨

 

치위 ~추위의 옛말

움치고~움츠리고의 준말

쓸어지게~쓰러지게

 

 

 

<어서 너는 오너라>

 

복사꽃이 피었다고 일러라 살구꽃도 피었다고 일러라

너이 오 오래 정들이고 살다 간 집, 함부로 함부로 짓밟힌 울타리에,

앵두꽃도 오얏꽃도 피었다고 일러라. 낮이면 벌떼와 나비가 날고

밤이면 소쩍새가 울더라고 일러라

 

다섯 뭍과, 여섯 바다와, 철이야, 아득한 구름 밖 아득한 하늘가에,

나는 어디로 향해야 너와 마주 서는 게냐.

 

달 밝으면 으레 뜰에 앉아 부는 내 피리의 서른 가락도 너는 못 듣고,

골을 헤치며 산에 올라, 아침마다 푸른 봉우리에 올라서면, 어어이 어어이

소리높여 부르는 나의 음성 너는 못 듣는다

 

어서 너는 오너라. 별들 서로 구슬피 헤어지고, 별들 서로 정답게 모이는 날,

흩어졌던 너이 형 아우 총총히 돌아오고, 흩어졌던 네 순이도 누이도 돌아오고,

너와 나의 자라나던, 막쇠도 돌이도 복술이도 왔다.

눈물과 피와 푸른빛 깃발을 날리며 오너라

비둘기와 꽃다발과 푸른빛 깃발을 날리며 너는 오너라

 

복사꽃 피고, 살구꽃 피는 곳, 너와 나와 뛰놀며 자라난 푸른 보리밭에

남풍은 불고, 젖빛 구름 보오얀 구름 속에 종달새는 운다.

기름진 냉이꽃 향기로운 언덕, 여기 푸른 잔디밭에 누워서 철이야, 너는

늴늴늴 가락 맞춰 풀피리나 불고, 나는, 나는, 두둥싯 두둥실 붕새춤 추며,

막쇠와, 돌이와, 복술이랑 함께, 우리 우리, 옛날을 옛날을 뒹굴어 보자.

<청록집>19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