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형도(奇亨度)의 기구한 죽음과 詩
1960.2.16.~1989.3.7.
연대 정외과 졸
1985 동아일보 신춘문예 <안개>로 등단
경기도 옹진군 연평리에서 태어나다
1964년 경기도 광명시 소하리로 이사 그곳에서 20년간 살았다
1969 부친이 중풍으로 쓰러지자 어머니가 가계를 떠맡음
1975 바로 위의 누나가 불의의 사고로 죽은 후 이때부터 詩作 시작
연대 다닐 때 무척 쾌활했고 교정에서 노래를 부르면 다녔다 한다
아는 사람이 ‘성격파탄자’라고 하자 기형도는 ‘그렇다’라고 대답했다
현제 경기도 광명시 소하동 701-6에 기형도 기념관이 있다
여섯 살 때 한자투성이의 신문을 읽을 정도로 총명했다
이 아까운 인재가 1989.3.7. 새벽 3시 반 종로 파고다 극장 객석에서 29의 젊은 나이에 숨진 채 발견되었다. 사인은 뇌졸중이다
생전에 시집 한 권 내지 못하고…
유고 시집 <입 속의 검은 잎> 한 권 남겨놓고 갈 줄이야
아~아~ 기형도
기형도의 시들
안개 –1985 동아일보 신춘문예 등단 작품. 작품의 배경은 안양천 변 방죽임
1
아침저녁으로 샛강에 자욱이 안개가 낀다.
2
이 읍에 처음 와본 사람은 누구나
거대한 안개의 강을 거쳐야 한다.
앞서간 일행들이 천천히 지워질 때까지
쓸쓸한 가축들처럼 그들은
그 긴 방죽 위에 서 있어야 한다.
문득 저 홀로 안개의 빈 구멍 속에
갇혀 있음을 느끼고 경악할 때까지.
어떤 날은 두꺼운 공중의 종잇장 위에
노랗고 딱딱한 태양이 걸릴 때까지
안개의 군단은 샛강에서 한 발자국도 이동하지 않는다.
출근길에 늦은 여공들은 깔깔거리며 지나가고
긴 어둠에서 풀려나는 검고 무뚝뚝한 나무들 사이로
아이들은 느릿느릿 새어 나오는 것이다.
안개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처음 얼마 동안
보행의 경계심을 늦추는 법이 없지만, 곧 남들처럼
안개 속을 이리저리 뚫고 다닌다. 습관이란
참으로 편리한 것이다. 쉽게 안개와 식구가 되고
ᅟ멀리 송전탑이 희미한 동체를 드러낼 때까지
그들은 미친 듯이 흘러다닌다.
가끔씩 안개가 끼지 않는 날이면
방죽 위로 걸어가는 얼굴들은 모두 낯설다. 서로를 경
계하며
바쁘게 지나가고, 맑고 쓸쓸한 아침들은 그러나
아주 드물다. 이곳은 안개의 성역이기 때문이다.
날이 어두워지면 안개는 샛강 위에
한 겹씩 그의 빠른 옷을 벗어놓는다. 순식간에 공기는
희고 딱딱한 액체로 가득 찬다. 그 속으로
식물들, 공장들이 빨려들어가고
서너 걸음 앞선 한 사내의 반쪽이 안개에 잘린다.
몇 가지 사소한 사건도 있었다.
한밤중에 여직공 하나가 겁탈당했다.
기숙사와 가까운 곳이었으나 그녀의 입이 막히자
그것으로 끝이었다. 지난겨울엔
방죽 위에서 취객 하나가 얼어 죽었다.
바로 곁을 지난 삼륜차는 그것이
쓰레기 더미인 줄 알았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개인적인 불행일 뿐, 안개의 탓은 아니다.
안개가 걷히고 정오 가까이
공장의 검은 굴뚝들은 일제히 하늘을 향해
젖은 총신을 겨눈다. 상처 입은 몇몇 사내들은
험악한 욕설을 해대며 이 폐수의 고장을 떠나갔지만
재빨리 사람들의 기억에서 밀려났다. 그 누구도
다시 읍으로 돌아올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3
아침저녁으로 샛강에 자욱이 안개가 낀다.
안개는 그 읍의 명물이다.
누구나 조금씩은 안개의 주식을 갖고 있다.
여공들의 얼굴은 희고 아름다우며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 모두들 공장으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