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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n한 詩문학 강의안 초고 ㅡ백석,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의 시인

koarm 2021. 9. 23. 13:03

백석 (白石)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의 시인

 

백석을 떠올리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과연 나타샤는 누구인가?

백석이 영어, 불어, 러시아어 독일어, 중국어, 일본어 등 외국어에 능통했으니 나타샤는 일반적인 러시아여인인가? 후술하는 박경련( 백석이 난이라 부름)이란 백석이 그렇게 사랑했던 여인인가? 아니면 그 시 원고를 건낸 자야라는 김영한이란 여인인가? 그 시 원고를 또 건낸 삼천리잡지 기자, 소설가인 최정희라는 여인인가? 백석만이 알고 있을 여인을 앞으로 추측해봅시다.

 

백석의 본명은 백기행,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나 오산고보를 졸업하고 일본 아오야마 학원에서 유학했다. 서울에서 <조선일보>기자, 함흥에서 영어교사를 지냈다. 1935<조선일보>에 시 <정주성>을 발표하며 등단했고, 1936100부 한정판으로 시집 <사슴33편의 시>을 간행했다.(발간 당시 2원이었던 이 시집은 온라인 경매가 7천만원에 낙찰되었다) 윤동주는 백석의 <사슴>시집을 구하지 못해 필사한 것으로 아려졌다.

 

방언을 즐겨 쓰면서도 모던니즘을 발전적으로 수용한 시들을 발표하였다. 토속적, 민족적이면서도 특이한 경지를 개척하는데 성공한 시인으로 8.15 광복 후에는 고향에 머물렀다. 북한 정권이 세워진 뒤에 잠시 문단 활동을 했으나 사회주의 체제에 적응하지 못하고 평양에서 쫓겨나 농사꾼으로 말년을 보낸 비운의 시인이다. 1940 토머스 하디의 <테스> 번역 발간

 

분단 이후 수십 년 동안 그는 남과 북 어느 쪽에서도 문학사적으로 인정을 받지 못했다. 그는 월북을 한 것이 아니였지만 1988년 월북 문인의 해방 이전 작품 공식 해금 조치 후에야 각광을 받기 시작하였다. 그는 토속적인 우리말로 민중들의 삶을 노래한 뛰어난 시인이다. 지금 시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한국 시인으로 꼽힌다. 1996년 북한의 양강도 삼수군에서 눈을 감은 것으로 전해진

백석의 여인들

박경련(백석이 난이라고 부른 여인): 백석은 친구 허준의 결혼식 피로연에서

박경련을 처음 만났느데 그 당시 이화여고생이었던 난이라는 여성을 사랑해 세 차례 통영에 갔다. 그러나 박경련은 백석의 친구 신현중과 결혼하고 백석은 통영에 갈 때 마다 <통영>이라는 시 3편을 썼다. 백석의 이루지 못한 사랑인 셈이다. 이 박경련이 나타샤인가? Text 백석의 통영 1,2,3

통영 충렬사 앞에 백석시비가 있음

 

김영한 (자야, 길상화)

백석은 함흥 영어교사 시절 회식 자리에서 김영한을 만남. 백석이 子夜라는 호를 지워줌

나는 백석의 연인이었다라고 주장한 여인

백석이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시 원고를 준 대원각이라는 요정의 기생. 그녀는 나중에 법정스님에게 천 억 원이 넘는 대원각 재산을 기부하면서 천 억 원이라는 재산이 백석의 시 한 줄 만도 못 하다고 했음. 현재의 길상사. 김영한과 백석의 관계에 대해서는 이설이 많음. 1997년 창비에 2억원을 들여 백석문학상 만듬. 이승은이라는 소설가의 백석과 김영한(진향)의 로맨스 소설도 있음

 

소설가 최정희

삼천리 잡지 기자 소설가였던 최정희에게도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원고를 줌 백석은 최정희와 친해지면서 여러 여성 문인을 소개받아 교류했는데 이 중에는 노천명, 모윤숙 같은 문인 들이 있었다. 이들 여성 3인방(최정희, 노천명, 모윤숙)은 백석을 사슴이라 불렀다

 

그렇다면 과연 나타샤는 누구인가?

란인가? 김영한인가? 최정희인가?

이는 백석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백석은 3번 결혼했는데 3번 다 자신의 뜻이 아닌 부모의 뜻이었다

첫 번째 부인 장정옥(1939~1940) ~이화여자전문학교 출신. 남북간 갈등이 고조되자 외아들을 데리고 월남했다는 기사가 있으나 확인된 것은 아니다

 

두 번째 부인 문경옥(1942~1943) 북한 최초 여성작곡가, 피아니스트 고부갈등으로 이혼

세 번째 부인 리윤희(1945~1996)~32녀를 두고 50년 넘게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