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사꽃 피고 질 때 마다

친구여 내 詩에 침을 뱉게

koarm 2021. 2. 13. 04:35

친구여 자네는 평생 후진 양성에 몸담아왔고

바람피운 적도 없이 고고하게 살아왔으니

친구여 내 얼굴에 침을 뱉게

 

자네는 유곽 한 번 들여다 본적도 없고

정도를 걸어왔으니

非道를 걸으며 아집과 독선으로

수없이 아내를 울리며

자네의 윤리기준으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삶을 살아왔으면서도

를 쓴다고 설쳐대는 내가 가소롭지 아니한가

 

세상 사람들에게 아무 흠도 없었던 것처럼

태연히 행동했고 가책 없이 지냈어도

자네는 나의 더러운 과거를 알고 있지

 

나는 이제 자네 앞에 설 수도 없고

전화 통화도 할 수가 없네

부끄러워, 한없이 부끄러워

자네를 떠올리면

내 지난날의 어둠이 떠올라 부끄러워

그러니 친구여

내 얼굴에, 에 침을 뱉게

 

사실 내가 시를 쓴다는 것은

나 자신의 정화활동이지만

나 자신조차 내가 시를 쓴다는 것이 부끄러워

내가 시 라고 써놓은 글이 부끄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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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시여, 침을 뱉어라> 민음사 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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