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추일서정
나의 추일서정(秋日抒精)
박종복
이 가을에 생각나는 시
대학 때 여러 시를 필사해 논 대학 노트에서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가을날>이라는 시를 다시 감상한다
가을날
릴케
송영택 옮김
주여, 때가 왔습니다. 여름은 참으로 길었습니다.
해시계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얹으십시오.
들에다 많은 바람을 놓으십시오.
마지막 과실들을 익게 하시고
이틀만 더 남국의 햇볕을 주시어
그들을 완성시켜, 마지막 단맛이
짙은 포도주 속에 스미게 하십시오.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
지금 고독한 사람은 이후도 오래 고독하게 살아
잠자지 않고, 읽고, 그리고 긴 편지를 쓸 것입니다.
바람에 불려 나뭇잎이 날릴 때, 불안스러이
이리저리 가로수 길을 헤맬 것입니다
#Rike, Rainer Maria (1875~1926)
괴테 이후 독일의 최대 서정시인
‘두이노의비가’와 산문 ‘브리게의 수기’ 등이 있음
#송영택(1933~) 부산출생
시인, 번역문학가
우리에게도 여름은 길고 아주 더웠다. 폭염과 긴 장마.
이 시의 압권은 마지막 연-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
지금 고독한 사람은 이후도 오래 고독하게 살아
잠자지 않고, 읽고, 그리고 긴 편지를 쓸 것입니다-
그렇다 추야장 깊은 밤 어느 누구에게라도 좋으니 편지를 쓰고 싶다
가을에는 편지를 쓰겠어요 라는 대중 가요처럼.
다음은 한때 서도민요 시간에 김경배 선생님께 배워 서툴게 흥얼거리는 함경도민요 <신고산타령>을 불러볼까
신고산타령
받는 소리-어랑어랑 어허야 어야디야 내 사랑아
메기는 소리
<전략>
가을바람 소슬하니 낙엽이 우수수지고요
귀뚜라미 슬피 울어 이내 간장을 녹이누나
공산야월 두견이는 피나게 슬피 울고요
강심에 어린 달빛 쓸쓸히 비쳐있네
산수갑산 머루다래는 얼크럭 절크럭 졌는데
나는 언제 님을 만나 얼크럭 절크럭 질거나
<하략>
지금은 작고한 미국의 Martin Luther King 목사가
“술과 여자와 노래(시)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그 전 생애 동안 바보로 남는다”고 했다
영어 song이라는 단어가 노래라는 의미와 시라는 의미가 있잖은가
그런 의미에서 우리 민요는 귀한 우리의 시이다. <신고산타령>만 해도 가을 정취를 물씬 풍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