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n한 시문학 강의안 -기형도편 추가
엄마 걱정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 간 창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빈집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식목제(植木祭) -연세 춘추 (윤동주 문학상 수상 작품)
어느 날 불현 듯
물 묻은 저녁 세상에 낮게 엎드려
물끄러미 팔을 뻗어 너를 가늠할 때
너는 어느 시간의 흙 속에
아득히 묻혀 있느냐
축축한 안개 속에서 어둠은
망가진 소리 하나하나 다듬으며
이 땅 위로 무수한 이파리를 길어 올린다
낯선 사람들, 괭이 소리 삽 소리
단단히 묻어두고 떠난 벌판
어디쯤일까 내가 연기처럼 더듬더듬 피어올랐던
이제는 침묵의 목책 속에 갇힌 먼 땅
다시 돌아갈 수 없으리, 흘러간다
어디로 흘러가느냐, 마음 한 자락 어느 곳 걸어두는 법
없이
희망을 포기하려면 죽음을 각오해야 하리, 흘러간다
어느 곳이든 기척 없이
자리를 바꾸던 늙은 구름의 말을 배우며
나는 없어질 듯 없어질 듯 생 속에 섞여들었네
이따금 나만을 향해 다가오는 고통이 즐거웠지만
슬픔 또한 정말 경미한 것이었다
한때의 헛된 집착으로도 솟는 맑은 눈물을 다스리며
아, 어느 개인 날 낯선 동네에 작은 꽃들이 피면 축복
하며 지나가고
어느 궃은 날은 죽은 꽃 위에 잠시 머물다 흘러갔으
므로
나는 일찍이 어느 곳에 나를 묻어두고
이다지 어지러운 이파리로만 날고 있는가
돌아보면 힘없는 추억들만을
이곳저곳 숨죽여 세워두었네
흘러간다, 모든 마지막 문들은 벌판을 향해 열리는데
아, 가랑잎 한 장 뒤집히는 소리에도
세상은 저리 쉽게 떠내려간다
보느냐, 마주 보이는 시간은 미루나무 무수히 곧게 서
있듯
멀수록 무서운 얼굴들이다, 그러나
희망도 절망도 같은 줄기가 틔우는 작은 이파리일 뿐,
그리하여 나는
살아가리라 어디 있느냐
식목제의 캄캄한 밤이여, 바람 속에 견고한 불의
입상이 되어
싱싱한 줄기로 솟아오를 거냐, 어느 날이냐 곧이어 소
스라치며
내 유년의 떨리던, 짧은 넋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