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봉숭아 시리즈

koarm 2021. 2. 21. 15:33

봉숭아 꽃말은 Touch me not

나를 건드리지 말아요

 

봉숭아 1

 

나를 건드리지 마세요

내 좋아하는 것 막지 마세요

나도 당신 건드리지 않을 터이니

제발 나를 건드리지 마세요

 

나를 조금 안다고 간섭하지 마세요

나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아요

나는 나대로 뜨거운 화덕을 지나

여기에 왔으니

내 생에 감 놔라 배 놔라 관여하지 마세요

 

잡초 같은 나를

당신은 죽을 때 까지 알 수 없을 거예요

나는 매 순간 변하고

매 순간 자라니까요

나는 한 문장으로 표현할 수 없어요

당신이 안다고 생각하는 나는 피상적인 나예요

그런 나는 죽은 나요, 과거의 나예요

 

봉숭아 2

 

당신이 알고 있는 내가 아닌,

방금 전까지의 내가 아닌

지금 이 순간의 나를 보세요

 

지금 이 순간의 나를 보고 말하시오

방금 전까지의 내가, 내가 아니듯

과거의 나는 더욱 내가 아니지요

 

나는 순간순간 변해요

과거의 나를 생각하며

그 내가 나라고 말하지 마세요

 

나는 이 순간도 또 변했어요

변화 중에 있는 나를 보고 말하세요

나는 살아있고 살아있음으로 수시로 변합니다

 

죽은 내가 아닌

이 순간의 나를 보세요

 

봉숭아 3

 

이제는 건드려도

도를 지난 관여에도

폭발할 수 없는 순명을

깊은 슬픔으로 침전 한다

 

차라리 폭발할 때가 좋았을

거리로 뛰쳐나갈 수도

흔적 없이 사라질 수도 없는

십자가를 지고 가듯

 

말없이 담배나 피우던지

술이나 마시고

소리 없이 울던지

 

봉숭아 4

 

살아오면서

무섭게 어려운 시절도

이를 악물고 이겨내며 여기까지 왔다

 

몇 차례는 지병으로

한 때는 청춘의 시뻘건 죄의

대가를 치르기 위해

발가락 사이의 무좀처럼

장마철 화장실 곰팡이처럼

그렇게

용케도 죽지 않고 이겨냈다

 

생존에의 치열한 본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