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마와 숙녀
박인환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거저 방울 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 별이 떨어진다.
상심한 별은 내 가슴에 가벼움게 부숴진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는
정원의 초목 옆에서 자라고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의 그림자를 버릴 때
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때는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 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여류 작가의 눈을 바라다보아야 한다.
…등대에…
불이 보이지 않아도
거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목마 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거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두 개의 바위틈을 지나 청춘을 찾은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 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거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는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목마는 하늘에 있고
방울 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가을바람 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시 감상> ㅡ고암
버지니아 울프(1882.1.25.~1941.3.28.)와 박인환(1926.8.15.~1956.3.20.)의 생애
‘추행과 폭력이 없는 세상, 성 차별이 없는 세상에 대한 꿈을 간직하며’라는 유서를 남긴 채 1941년 3월 세계대전 한가운데서 주머니에 돌을 가득 넣고 템즈강에 뛰어 들어 60세로‘ 생을 마감한 <등대로>로 작가 영국소설가 울프
수려한 외모로 명동 백작, 댄디보이라 불려졌던, 모더니즘과 조니 워커, 럭키스트라이크를 좋아 했었다는 한국의 시인 박인환
6.25전쟁 이후 황폐한 삶에 대한 절망과 허무를 노래한 이 시를 발표하고, 시인 이상을 추모하며 연일 계속했던 과음이 원인이 되어 5개월 후 1956.3월 세상을 등진 시인
우리는 생각해 봐야한다
60을 살고 자살로 생을 마감한 먼 나라 소설가 울프의 생애와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생명수를 달라며 31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한, 6.25후 어려웠던 시대를 살다간 한국의 시인 박인환의 생애중 누구의 생애를 술안주 삼아 이야기해야 할 것인가를.
정끝별 시인은 <어느 가슴엔들 시가 꽃피지 않으랴>는 책에서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낡은 여성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우리의 시가 조금은 감상적이고 통속적인들 어떠랴. 목마든 문학이든 사랑의 진리든, 그 모든 것들이 떠나든 죽든,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 바람에 쓰러지는 술병을 바라다보아야 하는 것이 우리 삶의 전모라면, 그렇게 외롭게 죽어 가는 것이 우리의 미래라면’’이라고 시평을 달았다.
이덕무는 <문장의 온도>라는 책에서 「시문을 볼 때는 먼저 작자의 정경(情境)을 찾아야 한다.」 글을 볼 때는 무엇보다 먼저 글쓴이의 처지와 상황을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박인환시인이 위 시를 쓸 때의 정경을 생각하며 시를 읽는다면 새롭게 다가오지 않겠는가
<신간 시집>
#복사꽃 피고 질 때 마다 ㅡ박종복시집 ,교보문고판매(1544-1900) ,정가 1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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